한때 아침형 인간에 대한 내용이 매스컴을 타면서 전국적으로 붐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였고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라는 비난도 듣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은 유전적 요인으로 서로 다른 생체 리듬을 갖고 있다는 이론이 제기되었다. 즉, 모든 사람이 아침형 인간이 될 필요도, 또 될 수도 없다는 얘기다.
시간 강박관념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시간에 얽매여 살고 있다. 어릴 적 방학 때 작성했던 생활 계획표를 떠올려보면 동그란 원 안에 시곗바늘처럼 칸을 나눠 하루의 일과를 작성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방학 초에 열심히 고민해서 만들긴 했지만 지킨 날 보다 지키지 않은 날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이 생활 계획표는 이상하게도 자신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그것 자체가 족쇄가 되어 지키지 않았을 때 죄책감이 들게 한다. 생활 계획표라는 것은 부지런한 생활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만든 프로그램이지만 꼬박꼬박 정해놓은 시간 계획대로 살지 않는다고 과연 게으르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마치 IT 회사의 젊은 CEO가 일하다 말고 수영을 하고 싶다며 사옥에 있는 수영장에 가서 수영한다고 해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지 않았기에 게으르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학교 커리큘럼을 보면 과목별로 정해진 시간이 있다. 학원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채우려다 보니 학생들은 아침 일찍부터 밤늦도록 학교와 학원에서 생활한다. 또한, 모든 과목은 주어진 시간이 있고 주어진 시간이 끝나면 다른 과목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과목 중 어떤 부분에서 호기심이 생기고 열의가 생겨도 종이 치고 다른 과목으로 바뀌게 되면 전 시간에 받았던 호기심과 열의는 어찌 되었건 그날의 해야 할 다른 많은 과목이 남아있기 때문에 거기서 끝내야 한다. 시간을 정해 놓는 것은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효율적일지 몰라도 배우는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이다. 과목별 중요도에 따라 과목당 차지하는 시간도 달라지는데, 중요도라는 것이 과연 모든 학생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하루에 공부는 몇 시간을 해야 적당할까? 통계청의 조사에 의하면 2014년 하루평균 학습시간이 중학생은 7시간 16분, 고등학생이 8시간 28분이었고 학교 외 학습시간은 중학생이 2시간 40분, 고등학생이 1시간 52분으로 나왔다. 학교와 학원 시간을 합치면 중고등학생 모두 9시간 이상이다. OECD 국가 학생들의 1주일 평균 공부시간은 35시간이다. 스웨덴이 가장 적은 28시간이며, 가까운 일본은 32시간, 미국은 33시간이지만 한국은 50시간 이상이다. 심지어 국제 학력 평가 1위인 핀란드조차 30시간이 안 된다. 도대체 국제 학력 평가 2위인 한국은 그렇게 오랜 시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능력이란 말인가.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주의집중시간은 평균 15분에서 30분 사이라고 한다. 학업 성취도는 얼마나 오랜 시간 공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라 얼마만큼 집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학교를 떠나 홈스쿨링을 하게 되면 학년제도에서도 떠나게 된다. 사실 학교의 학년제도는 수준에 따른 교육도 아니며 발달 단계에 맞춰 나뉜 것도 아닌, 그저 입학과 진학, 졸업의 일률적 처리를 위한 행정적 편의를 위해 나뉜 것이나 다름없다. 학교에서는 1년 차이로 선후배 관계가 형성된다. 학교보다 선후를 심하게 따지는 곳은 아마도 군대일 것이다. 보통 입대 한 달 차이부터 선임과 후임으로 나뉘는데, 심한 곳은 일주일 차이로 나눈다는 얘길 들었다. 어찌 되었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어른들을 보면 위아래로 어느 정도까지는 터울 없이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작은 학교 학생들이 학년 없이 모여 함께 한다는 것은 위아래 나이 터울이 있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므로 오히려 사회성을 형성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 하겠다.
시간에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또한, 삶이 자유로워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스무 살엔 대학을 가야 하고 서른 즈음엔 결혼해야 한다는 규칙은 없지만, 대부분이 그렇게 하고 있고 그때를 놓치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사실 그러한 집단주의 문화에서 오는 느낌에서만 벗어나도 삶은 한결 여유로워진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외모도 빈약하고 출세가 늦어 친척들로부터 멸시를 당한 최림이란 사람은 후일 천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에 이르게 된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말은 사실 시간이 아닌 노력에 중점을 둔 말이다. "누가 먼저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떤 무엇이 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처럼 시간이 아닌 더 근본이 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시간 싸움에서 지는 것이 진정한 패배다. 인생은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이며, 모든 게임에 연장전이 있듯이 느긋하게 인생이란 게임을 즐겨야 오랫동안 힘을 내며 달릴 수 있다.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너무 빨리 가다 보면 주위 경관뿐이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놓치게 된다.” (에디 캔터)